갑자기 들이닥쳐
아들이 빌려 간 돈 내놓으라는 사채업자들
"돈 없어, 돈 대신 나 데려가"
그녀는 누구한테도 기죽지 않는
백전노장의 파이터
지금부터 요약해드릴
'천국보다 아름다운' 드라마의 주인공인
여든살의 이해숙입니다.
해숙은 일수업자
아시다시피 하루 단위로 돈 빌려주고
매일매일 이자 챙기는
고금리 일수 사채업자입니다.
오늘도 역시 이자 걷기 위해 시장을 도는데
갑자기 날아오는 물벼락 세례
그녀한테 돈 빌린 상인이
실수인 척 테러를 한 거죠.
하지만 물보다 빠르게 펴지는 우산
일수바닥에서 잔뼈 굵은 그녀가 터득한
360도 전방위 우산 방어 기술입니다.
한 방울도 안 맞고 가뿐히 돈 챙기죠.
그녀의 곁에는 항상 영애가 있죠, 이영애
해숙의 보디가드 역할
그림체가 불분명해
궁금하실까봐 말씀드리면
여자입니다. 확실히 여자입니다.
집에 돌아와
맛있는 팥칼국수 끓이는 해숙
맛있게 먹어줄 주인공은
해숙의 남편인 낙준
고낙준은 젊은 시절에 하반신 마비가 되어
수십년의 세월을 침상에서만 누워 보냈습니다.
때문에 해숙이 오랜 기간
가장 역할을 해온 거였죠.
험하디 험한 일수바닥에서
침 꽤나 뱉을만큼 단련이 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겁니다.
그녀는 살기 힘들어 이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살기 힘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욕합니다.
"지옥에나 가버려!"
상가집 노잣돈까지 수금하다가
온갖 멸시와 저주를 받게 되죠.
사정 다 봐주면
자신과 남편이 살 수 없기에
묵묵히 이 길을 걸어온 해숙이지만
나이드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떼는 해숙
"진짜 지옥이라는 게 있을까?"
그걸 듣고는 눈치 없이 열변 토하는 영애
"당연히 있겠죠"
"평생 나쁜 짓하던 놈들은
지옥 가서 눈 뽑히고 혀 잘리고
척추 마디마디 접힌 후
종이접기 김영만 아저씨한테 한번 더 접히는
그런 지옥이 분명히 있을걸요"
"하..."
착잡해지는 해숙
그녀가 무서운 건 지옥 가는 게 아닙니다.
무서운 건 한가지.
평생 착하게만 살아온 남편은
분명히 천국 갈텐데
만약 자기는 지옥 가면
죽어서도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항상 해숙과 함께 다니는 영애는
정확히 그녀와 어떤 관계인 걸까요?
사실 영애는 아주 오래 전
해숙에게 돈을 빌려갔던 빚쟁이의 딸이었죠.
해숙이 수금하러 가보니
개차반 아버지 밑에서 완전히 방치돼있던
어린 영애가 있었던 겁니다.
해숙은 빚을 탕감해주는 댓가로
영애를 자기가 데려와서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고, 알려주며
엄마처럼, 선배처럼, 스승처럼
그렇게 오랜 세월 지내왔던 겁니다.
피를 나눴지만
그 피 다시 뽑아버리고 싶은 망나니 아들보다
영애가 더 가족 같죠. 더 각별합니다.
여든의 사춘기처럼 생각이 많아진 해숙
진짜 지옥에 가는 악몽을 꾸는 바람에
남편이 잠든 방에 건너가 손을 잡고
비로소 그제서야 잠에 드네요.
처음 그때처럼
늘 사랑하고, 늘 로맨틱한 두 사람
해숙이 낙준 곁에 예쁜 꽃도 놓아주며
10대, 20대 능가하는 알콩달콤 대사를 주고 받는데
이 씬에서 낙준은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당신은 지금이 제일 예뻐요"
"하루 같이 살면 하루 더 정이 쌓여서 예쁜 건가
지금이 우리 마누라 제일 예뻐요"
계속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달콤낭만 대사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죠.
다음날 교회를 찾은 해숙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남편 천국 가게 해주세요"
"이왕이면 저도 같이 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서 며칠 뒤
낙준이 눈을 감습니다.
영원히 잠든 것이죠.
슬퍼하는 해숙을 꼬옥 안아주는 영애
그리고 나서 또 얼마 뒤
해숙은 영애에게 마지막 선물처럼
360도 전방위 우산 방어 기술 노하우를 전수해 준 후
그녀도 이윽고 눈을 감습니다.
남편을 따라 가게 된 것이죠.
그런데 과연,
남편 곁으로 가게된 게 맞을까요?
이제부터 본격 드라마의 시작, 활발한 전개
죽은 해숙의 곁에 나타난
올블랙의 기묘한 남자
옛날로 치면 저승사자라고 하네요.
그런데 지금은 저승에도 산업화가 발달해
그닥 할 일 없어져 저승사자라는 명칭 대신
그냥 데려가는 역할, 인도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처음 죽어본 해숙, 궁금한 게 많네요.
"남편도 봤어요?
언제 봤어요?, 어디 갔어요?, 천국 갔어요?"
"나는 어디로 가요?"
맨날 똑같은 질문만 들으니
매너리즘에 빠진 올블랙 남자
시큰둥 대충 답합니다.
"몰라요, 천국 지옥 어디든 갔겠죠"
"당신도 가보면 알겠죠"
좋아진 저승
저승 가는 교통편까지
클라이언트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네요.
택시, 버스, 지하철 중 지하철 선택하니
이윽고 바로 도착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떼
조심스레 탑승하는 해숙
옛날처럼 염라대왕 앞에서
천국, 지옥 어디 갈지 심판 당하는
그런 올드한 시스템은
이제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냥 지옥역에서
문 열리고 빨려 들어가면
지옥에 떨어지는 거죠.
이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긴장초조...
완전 마음 졸이던 해숙은 다행히도
지옥역 무사 통과
그토록 기다리던 천국, 천국역에 도착합니다.
천국의 검문대
죽으면 다 놓고 가야된다고 하네요.
돈, 명예, 물질 다 필요 없습니다.
가져갈 수 있는 건 오직
소중한 추억, 기억 그 뿐
다 내려놓고 걸어들어가서
직원과 면담을 하는 해숙
역시 매너리즘에 빠져서
빨리 퇴근만 고픈 저승의 직원은
해숙에게 빠르게 빠르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천국에 왔습니다.
천국에서 누구랑 같이 살고 싶으신가요?"
물으나마나 해숙의 선택은
당연히 낙준이죠.
낙준 여기 있냐고 물으니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네요.
이미 기쁜데 더 행복한 다음 소식
낙준도 같이 살고 싶은 사람으로
해숙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아주 좋네요.
모든 게 완벽한 상황
빨리 만나고 싶어지는 상황
마지막 두번째 질문 나옵니다.
"당신은 천국에서
몇살의 모습으로 살고 싶으신가요?"
소녀 마냥 밝은 웃음꽃이 피는 해숙
"그럼 저는 20살이나.. 25살 정도...."
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멈칫하는 해숙
어떤 한 장면이
그녀의 뇌리를 스칩니다.
남편 낙준이 해숙에게
"당신은 지금이 제일 예뻐"
라고 말해주었던 그 순간이
번뜩 스친 거죠.
해숙은 딜레마에 빠진듯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80이요!" 당당히 외칩니다.
별 생각없이 받아 적다가
갑자기 깜놀하는 직원
"80이요?! 여든살로 살겠다고요?
진짜요? 진심이세요?
한번 정하면 절대 무를 수 없는데?"
"네 80이요, 무조건 80이요"
결심 굳힌듯 미동도 하지 않고
80만 외치는 해숙
"네네, 잠시만요, 이런 적이 오랜만이라"
당황한듯한 직원은
어떤 기계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것은 80세 이상을 선택한 분들한테만 지급되는
일종의 나래이션 버튼
혼자 생각하는 마음의 소리가
앞으로 이 기계를 통해
밖으로 그대로 흘러나올 거라고 하네요.
노인들에게만 지급되는
일종의 편의장치인 겁니다.
편의장치인지 저주장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험 삼아 눌러보는 해숙
나래이션 기계음 흘러나오네요.
"해숙은 벌써 부터 가슴이 뛰었다.
남편을 만나면 무엇부터 할까..."
정상 작동이 잘 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모든 절차 마치고
드디어 천국,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동네로
배달되어진 해숙
이럴수가, 80살 선택했더니
무릎 관절염이 여기서도 도졌습니다.
운명의 속삭임 이끌리듯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니
남편이 나중에 같이 예쁜 집 짓고 살자고 했었던
바로 그 형태의 그 집이
그대로 갖추어져 있네요.
두근두근, 요동치는 심장 진정시키며
떨리는 마음으로 그 집의 벨을 누르자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남편이
진짜 그 집에서 나옵니다.
이럴수가.. 손석구...
그것도 30대...
망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단어는 아주 많습니다.
쉣, 퍽, 망, 홀리쉣, 지저스 크라이스트까지
단단히 잘못됐음을 감지하고
경악스러워하는 해숙
놀라기는 낙준도 마찬가지
오히려 더 큰 패닉에 빠졌습니다.
"다.. 당신은? 해숙? 여보?
어르신, 노약자, 할머니?...
어머님?"
네, 남편인 낙준은 30대를 선택했고
해숙만 완전 실수로 여든살 선택한 거였죠.
그렇게 30대 남편과 여든살 아내의
대단히 잘못된 천국 상봉이 이뤄집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골 때리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될
천국보다 아름다운 2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오랜만에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아주 독특한 컨셉의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났습니다.
본방 사수로 보시면
더더욱 큰재미 느끼실거라 확신합니다.
그럼 다음 2회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